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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요즈마그룹 아시아총괄대표 

한국에서 나올 이스라엘판 ‘삼성전자’ 

김영문 기자
이스라엘에는 글로벌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해 차린 R&D 센터가 널려 있다. 이곳에서 글로벌기업은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를 읽지만, 자체 제조까지는 역부족이다. 한국은 막강한 제조 기술을 확보하고 있지만, 상당수 기업이 내수시장만 겨냥하고 해외 진출에는 소극적이다. 요즈마그룹은 양국 산업계를 이어 새로운 대기업 탄생을 꿈꾸고 있다.

▎이원재 요즈마그룹 아시아총괄대표는 “이스라엘의 혁신 신기술을 국내 제조기업과 연계해 양국 기업의 역량을 높이고 글로벌시장에 진출하게 하는 전략을 펼치고자 한다”며 “이스라엘 기술 스타트업이 한국 기업과 손잡고 한국에 이스라엘판 삼성전자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광주 건물 붕괴 참사의 인명구조를 위해 제안합니다. (중략)… 아울러 이스라엘 특수부대 ‘유니트(Unit) 9900’ 파견을 정부에서 요청할 것을 제안드립니다. 특수부대 ‘유니트(Unit) 9900’은 3D 방식으로 건물이 붕괴되기 전 이미지와 붕괴 이후를 비교해 잔해 위치 및 규모 등을 산출해 잔해 속에서 인명을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구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지난 1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 일부)

“이스라엘은 최첨단 혁신 기술에, 한국은 독자적인 기술 제조와 글로벌마케팅에 강점이 있다. 두 나라 모두 1948년 말 그대로 잿더미에서 일어났으며, 적국에 둘러싸여 있고 천연자원 없이 인적자원만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이런 이유로 양국의 상호 이익을 위해 더 깊은 관계를 원한다.”
-야이르 골란 이스라엘 경제통상산업주 차관(중앙일보 2021년 12월 9일 자, 최준호 논설위원 기사 중 일부)

서로 동경하면 닮아갈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없는 것’도 보이는 법이다. 안 대선후보와 골란 차관이 한 발언을 보면 한국과 이스라엘의 산업계가 경쟁이 아니라 ‘서로에게 없는 것’을 채워 상호 보완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양국 산업계 대다수 인사도 양국을 서로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글로벌기업과 손잡고 미국 나스닥 상장만 노리던 이스라엘 벤처캐피털(VC) 요즈마그룹은 좀 더 일찌감치 눈치채고 움직였다. 1993년 정부가 40%(1억달러), 민간이 60%(1억6500만달러)를 출자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요즈마그룹 눈에 한국이 들어온 것이다. 요즈마그룹은 2015년 첫 해외 법인을 한국에 차리고, 한국의 유망한 기술 스타트업을 발굴하며 이스라엘 기술을 한국 제조업에 접목하고자 했다. 4년 전 포브스코리아와 인터뷰했던 이원재(38) 아시아총괄대표도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한국 스타트업을 발굴해 이스라엘 같은 세계적인 창업국이 되도록 돕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국내 VC업계도 ‘이스라엘식 창업 성공 비결’이 전수될 기회라고 기대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한국에 온 지는 8년, (포브스코리아와) 인터뷰한 지는 벌써 4년이나 흘렀네요.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실망했다는 이도 많았습니다. 솔직히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선 건 2년 정도 됐다고 할 수 있죠. 이갈 에를리히요즈마그룹 회장님이 ‘먼저 한국을 공부하고, 네트워크부터 쌓은 후 투자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 수년간 한국의 좋은 회사를 소개해도 투자 승인이 나지 않았죠. 그리고 2018년부터 승인이 나기 시작해 지금까지 4천억원 가까이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1월 5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요즈마그룹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이 총괄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히브리대에서 비교종교학 박사 과정을 밟는 어머니를 따라 열두 살 때부터 이스라엘에서 자랐다. 그도 히브리대 경제학과를 나와서 이스라엘 총리 아시아경제자문관을 지냈고, 그때 만났던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그룹 회장과 연이 닿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능성을 찾는 첨병 역할을 맡게 됐다. 4년 만에 만난 그는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고 했다. 투자 외 ‘임무’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그는 “글로벌 기술혁신 트렌드에 맞춰 투자한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기술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며 “단순히 기술을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조인트벤처를 만들어 양국 기업이 글로벌시장에 함께 진출하도록 돕는 것이 주요 목표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성과도 있었다. 이스라엘 의료기기 스타트업 ‘나녹스’가 경기도 용인시에 반도체 공장 준공을 앞두고 있고 한국 바이오리더스가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p53 표적 항암제 기술을 이전받아 합작법인 퀸트리젠을 차린 일 모두 이 총괄대표의 ‘공’이 컸다. 더불어 디지털 자산거래소 두나무에 투자하고, 급성췌장염 관련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나선 SCM생명과학에도 투자했다. 특히 바이오리더스의 경우 올해 들어 다국적 제약사도 실패했던 p53 항암제 전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임상 후보 물질을 결정하고 기술수출 논의까지 본격화하고 있다.

조력자도 생겼다. 지난 1월 7일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련)가 요즈마그룹과 함께 ‘한-이스라엘 기술협력센터’를 열었다. 이곳은 우수한 제조·양산 기술을 갖춘 한국 중견기업과 이스라엘 혁신 스타트업 간 협력 거점이 될 예정이다. 이 총괄 대표는 “이제야 한국과 이스라엘이 세계로 뻗어 나갈 방법을 찾은 듯싶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대대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건가.

그렇다. 요즈마그룹코리아의 사업도 해외와 국내 부문으로 나눠 책임경영을 하기로 했다. 나는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한 해외 딜 소싱이나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에 집중하고, 2019년 전략 총괄 부사장으로 합류한 이동준 대표가 국내 투자와 사업 개발을 전담하기로 했다. 올해는 나녹스처럼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해외, 특히 한국 생산시설과 연결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국내 벤처캐피털이 하기 힘든, 우리만의 경쟁력이다.

중견련과도 손잡았다.

지난해 4월부터 협력을 모색해왔다. 지난해 양 기관이 800억원 규모의 ‘한-이스라엘 중견기업 성장펀드(요즈마-ATU Game Changer 1호)’를 조성해 연 매출 5000억~1조원 사이 중견기업의 신정장동력을 발굴하는 데 머리를 맞대고 있다. 올해 중견련과 함께 세운 ‘한국-이스라엘 기술협력센터’가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수년간 한국 중견기업을 살펴보면서 2세 오너가 승계할 때 혁신 기술을 토대로 비즈니스를 전환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아마도 신사업에서 2세 경영인이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다 보니 더 그럴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스라엘 기술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았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글로벌기업이 더 매력적이지 않나.

400여 개가 넘는 글로벌기업이 이스라엘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세웠다. 미국 나스닥에 곧장 상장하려는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을 부러워하며(?) 동경하는 이도 많다. 이스라엘은 서울 인구보다 적은 940만 명이 살고, 면적도 경기도보다 작은 나라다. 시장 특성상 스타트업이 제조 기술을 쌓아 중견기업으로 거듭나는 것보다 글로벌기업에 합병되는 게 훨씬 합리적인(?) 곳이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2014년 한국에 오자마자 대기업의 활약상을 정리해 이갈 회장에게 보고했을 때 놀라워했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이스라엘도 삼성전자를 꿈꾼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이스라엘판 ‘삼성전자’를 꿈꾸는 이가 많다. 요즈마는 이스라엘 혁신 기술과 한국 제조 기술을 융합해 한국 기업이 수십 년간 탄탄히 쌓아온 제조 기술로 생산한 ‘메이드인코리아’ 제품을 글로벌시장에 내놓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나녹스도 완제품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라도 한국에 생산기지를 두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 이스라엘의 많은 스타트업도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제조 기술을 가진 중견기업이 포진한 곳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이스라엘 기술 스타트업과 뛰어난 한국 기업이 손잡고 한국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늘어날 것이다.

한국에 반도체 공장 준공한 나녹스

나녹스 외에 한국에 생산기지를 꾸릴 만한 기업을 소개한다면.

이스라엘 스타트업 스토어닷(Store Dot)이 있다. 이 기업은 이미 수년 전에 5분 안에 완전히 충전되는 스마트폰 배터리를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최근에는 전기차용 극초고속충전(XFC) 배터리 기술 개발에 성공해 기존에 1시간 넘게 걸리던 충전 시간을 10분 내로 줄였다. 지난해 9월 테슬라가 쓰는 4680 원통형 셀을 10분 만에 완충하는 시제품을 발표한 것이다. 이미 영국 BP, 독일 다임러, 일본 TDK가 투자했고, 요즈마가 3대 주주로 자리하고 있다. 요즈마는 한국의 자동차 관련 제조사, 배터리 제조사와 접촉해 스토어닷의 아시아 진출을 앞당기고, 한국생산기지 건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투자 트렌드가 또 달라졌다.

정말 빠르게 변한다. 우리도 딥테크, 바이오, 헬스케어, 각종 디바이스 투자를 비롯해 ‘ESG’와 ‘메타버스’를 주요 투자 테마에 추가했다. 요즈마는 앞으로 이 두 분야가 급성장할 것으로 보고 관련 기업에도 투자했다. 먼저 이산화탄소(CO₂)를 비롯해 각종 유해가스와 초미세먼지, 바이러스 등을 포집해 깨끗한 공기로 전환하는 기술을 가진 이스라엘 클린테크 기술기업 에어로베이션(Airovation)을 소개하고 싶다. 이곳은 요엘 사손(YoelSasson) 히브리대 교수가 개발한 활성산소 ‘슈퍼옥사이드 라디칼’을 활용해 공기 중 유해가스와 바이러스 등을 제거한다. 이 기술로 코로나19 바이러스도 1~2초 만에 99.97% 제거할 수 있었다.

메타버스도 최근 주목받는 분야다.

맞다. 이 시장은 1700조원 시장으로 떠오르며 수많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기회를 찾는 분야다. 요즈마는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그리기보다는 메타버스 활성화에 따라 커질 디바이스 분야에 주목했다. 그래서 투자한 곳이 에브리사이트(Everysight)다. 1985년 F16 전투기용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만들던 엘빗 시스템에서 스핀오프(사내벤처 분사)한 회사다. 엘빗에서 30년간 일한 AR 전문가들이 모여 현존하는 최소형 AR 스마트글라스 ‘랩터(Raptor)’를 개발해 글로벌 출시를 준비 중이다. 메타버스 시대가 본격화되면 랩터가 진가를 드러낼 것이다.

관심 있는 한국 기업도 많겠다. 하지만 지난해 요즈마그룹이 ‘실체’ 논란에 휩싸였다.

지금은 오해가 풀렸다. 이스라엘 요즈마 사무실 주소가 잘못 알려져 생긴 오해 같다. 요즈마그룹 본사는 1998년 이스라엘 최대 산업·금융그룹 중 하나인 오페르그룹에 매각돼 민영화됐다. 민영화 이후 요즈마펀드 2와 3을 결정해 40개가 넘는 이스라엘 기업에 투자했고, 2014년부터 다수 기업은 미국 유수의 벤처캐피털과 JP모건 같은 글로벌 IB에 매각했고, 20개 넘는 기업이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기업공개(IPO)에 성공했다. 상장 사례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민간 투자금이 몰렸고, 정부 모태펀드를 청산하고 개인 투자로 돌리는 계기가 됐다. 그때 쌓은 자금을 기반으로 고유자산 투자(패밀리 오피스)에 나섰다. 지금은 기존 요즈마펀드로 전 세계 컨설턴트와 어드바이저를 키우며 이스라엘 기술 스타트업과 협력 모델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요즈마그룹코리아 조직도 그만큼 커졌다.

이스라엘 기술 스타트업이 한국에 관심이 높아진 만큼 우리의 역할도 커졌다. 이스라엘 현지 분위기도 이제 스타트업네이션이 아니라 제조 기술을 품은 ‘스케일업네이션’을 추구하는 열망이 강해져 요즈마그룹코리아도 일이 늘었다. 보통은 소규모 투자를 하고, 전략 컨설턴트를 고용해 기업에 파견하거나 일정 기간 지켜보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업화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원천기술을 이전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거나 해외 진출을 컨설팅하는 일도 한다. 다시 말해 초기 투자부터 후속 투자, 사업화, 글로벌 진출, 기업공개까지 성장에 필요한 모든 걸 돕고 있다. 이를 위해 전문 인력 37명이 밤낮없이 뛰고 있다.

요즈마그룹에서 한국 법인의 역할도 많이 달라졌겠다.

그렇다. 사실 요즈마그룹은 아시아 진출 거점을 싱가포르에 뒀었다. 하지만 한국이 기술 대국으로 성장하고, 각종 기술 스타트업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국과 이스라엘 양국 기업이 조인트벤처를 만들어 시너지를 낼 유인이 훨씬 커졌다. 실제 한국이 확보한 제조 기술은 이스라엘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고도화돼 있어 함께 손잡고 글로벌시장에 곧바로 상품을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한국은 제조기술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연구개발 기관도 포진한 곳으로, 올해엔 이스라엘 대학 연구기관과 한국의 카이스트, 포스텍,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 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 등을 잇는 활동도 전개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8년 정도를 쉴 새 없이 달리다 보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요즈마그룹, 더 나아가 요즈마그룹코리아가 성장하는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4년 전 포브스코리아와 인터뷰했을 때만 해도 한국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 사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갈 에를리히 회장이 나의 역할을 강조하며 중심을 잡아줬다. 나뿐만 아니라 회장을 비롯한 이스라엘 산업계도 한국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난해 한국과 이스라엘이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한 것이 그 증거다. 그 까다로운(?) 이스라엘이 무역협정을 체결한 첫 국가가 바로 한국인 것이다. 유대인은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능과 능력인 ‘달란트’를 주신다고 믿는다. 더불어 그 달란트로 세상에 우뚝 서려면 친구와 함께하라고 가르친다. 이스라엘은 한국과 피를 섞을 준비가 돼 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202202호 (20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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