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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에 감언이설 하더니"…차등의결권 좌절에 스타트업 가슴 친다

전범주,양연호 기자
전범주,양연호 기자
입력 : 
2022-01-11 17:34:05
수정 : 
2022-01-12 1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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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못따라가는 여당

벤처에 총선공약 내걸었지만
편법승계·주주평등성 이유로
1년 넘게 시간 끌다 좌절시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세상이 변했는데 정치권 여전
대한민국이 몰락할까봐 걱정"

유망스타트업 "해외상장 고민"
◆ 與에 발목잡힌 차등의결권 ◆

사진설명
비상장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을 허용해준다는 내용의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 여당 의원들에게 발목을 잡혀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여당이 한 약속을 스스로 내동댕이치고 있다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국내 대표 벤처기업들이 자리 잡은 판교 테크노밸리. [이승환 기자]
"기업가의 혁신 없이 대한민국이 세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나. 기득권 1명이 1만명을 착취하던 시대는 저물고, 혁신가 1명이 10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옛날얘기만 하고 있는 일부 정치권을 보면 대한민국이 몰락할까 걱정이다." 한국 벤처기업 업계의 정신적 지주인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여당 일부 의원의 반대로 국회에서 복수의결권 도입이 무산되자 미국 출장길에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혁신하려는 기업가의 뒷다리를 잡지 말고, 그 가치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절규에 가까웠다.

11일 황 회장은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모두 좋고 모두 나쁠 수는 없지만, 복수의결권은 확실히 혁신기업가에게 필요한 제도"라며 "우리나라가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느냐 못 하느냐는 혁신기업가를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인정하느냐 그러지 않느냐의 문제"라고 입을 열었다. 황 회장은 "이제 세상이 투명해져 기업가가 숨어서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돈 많은 특정 개인을 착취자로 보기보다 인생을 걸고 혁신에 몸을 던진 기업가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또 그는 "여러 청년기업가와 벤처기업을 만나고 도와줬지만 정말 혁신하려는 기업가들에게는 복수의결권의 필요성이 컸다"며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새로운 법률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혁신 없는 대한민국은 몰락한다"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도 최대주주 편법 승계와 소액주주 이익 침해라는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의 반대 이유에 대해 '단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벤처기업들이 한 단계 도약해 우리 경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선 경영권 걱정 없이 자금 조달을 원활히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한시적으로 창업주에 한해 복수의결권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입법도 하지 못한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 교수는 "반대하는 측에선 이런 복수의결권이 벤처에만 허용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재벌의 경영권 상속으로 이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복수의결권 도입으로 인해) 벤처 스타트업이 활성화돼야만 재벌 위주의 경제 운용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생들이 삼성 같은 대기업에만 지원하지 않고 스타트업에도 도전하고, 대형 시중은행 직원들이 토스 같은 온라인 은행으로 이직하는 새로운 인적 자원의 흐름을 증폭시켜야 한국 경제에 미래가 있다는 말이다.

실제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1년 넘는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복수의결권 도입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대부분의 요소를 보완한 상태다. 예컨대 복수의결권 법안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복수의결권 도입이 상법상 주주평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이사의 보수,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 감면 등 회사 경영과 직결된 주요 사항과 관련해 복수의결권 주식도 1주마다 1개의 의결권만 가지도록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 경영진의 편법승계를 막고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됐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을 보면 벤처기업 창업주의 복수의결권 주식은 존속기간이 10년으로 제한되고 기업이 상장하면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보통주로 전환해야 한다. 창업주가 주식을 상속·양도하거나 이사직을 상실하면 차등의결권도 사라진다.

이미 상법에서 의결권 없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니 굳이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이 만만치 않다. 벤처기업에 지분을 투자하고 함께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벤처투자자 사이에서 무의결권 주식에 대한 수요가 없어 발행 실적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의결권이 배제된 주식을 매입하며 자본을 제공할 투자자가 실상은 없다는 얘기다. 복수의결권 도입으로 벤처투자 생태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성배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지금까지 현실을 보면 창업가가 창업 초기에 단계별로 자금 유치를 하는 과정에서 지분 희석을 우려해 대규모 투자금 유치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복수의결권 도입은 오히려 투자자 입장에서 장기적 관점으로 대규모 투자를 실행할 수 있어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 '윈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되레 일선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사이에선 지금의 벤처기업법 개정안을 두고 '무늬만 차등의결권'이라며 실익이 별로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공지능(AI) 관련 스타트업의 A대표는 "10년 만기에 상장 후 폐지되는 '무늬만' 차등의결권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며 "정치권에선 기업 하면 재벌만 떠올리고 규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쿠팡처럼 실질적인 차등의결권이 가능한 해외로 본사를 옮기고 현지 상장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 벤처캐피털의 B대표는 "유망한 스타트업들은 법인 설립 단계부터 국내와 싱가포르 등 해외 상장을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한다"고 말했다.

[전범주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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