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창업보다 절실한 엑시트 지원 정책

정연규 그립 대표
정연규 그립 대표

한국 고용시장에서 중소벤처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83%에 달한다. 안정적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버팀목이 돼야 할진데 중소벤처기업이 처한 현실은 매우 불안하다. 국내 약 3만개 중소벤처기업 중 매출 20억원 미만이 약 90%를 차지하고 소상공인 등 영리법인까지 포함하면 70만개 이상 기업 중 평균 30~40%가 매년 폐·창업되고 있다. 이 가운데 기업공개(IPO)까지 가는 기업은 0.03% 이내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부 유니콘 스타트업의 성공사례가 언론에 소개되고 있지만 95% 이상의 중소벤처기업이 죽음의 계곡을 버티지 못하거나 경영을 지속할 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차기 정부는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더 세밀하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실효성 높은 제도 개선과 정책 지원을 전개해야만 한다.

창업보다도 후속 지원과 엑시트(Exit)가 더 절실하다. 기술개발 성과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회사를 설립하고 인력을 뽑아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수년간 상용화, 사업 확장, 투자 유치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된다.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를 극복한 기업가보다 중도 포기하는 기업가가 더 많다. 사업에 실패하면 그동안 쌓아 온 연구개발(R&D) 성과, 노하우, 지식재산권(IP), 정부지원금, 투자자금 등이 한순간 '제로(0)'가 된다.

정부는 혁신 주도 중소벤처기업에 매년 20조원 이상 국가 R&D 예산을 지원하며 지속성장을 위한 마중물을 붓고 있다. 소중한 국민세금이 쓰인 만큼 상용화를 궁극적 목표로 삼아 정책적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코스피나 코스닥에 상장하는 것이 이상적일 수 있지만 스타트업·중소벤처기업에는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IPO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투자자나 이해관계자를 위한 엑스트 전략 중 M&A가 최선이 될 수 있다. 기업이 쌓아 온 수많은 기술적 노하우와 IP가 사장되지 않고 중요한 국가적 자산이 될 수 있다.

현 정부의 지원 대상은 설립 3년 또는 7년 이내 기업이 약 70%를 차지한다. 일부 스케일업 지원 제도가 있지만 국내경제의 버팀목은 10년, 20년 수차례 위기를 극복하면서 임직원 임금을 꾸준히 지급하며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한 기업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들은 정부 지원제도나 정책, 모태펀드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우선순위에 밀린다. 업력이 아니라 기업 매출 규모나 기술적 성숙 단계를 기준으로 정책적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영업·마케팅이다. 개념검증(PoC) 과정을 거쳐 상품화 단계까지 온 기업 대다수는 대기업처럼 많은 자금을 홍보·마케팅에 활용하기 어렵다. 대부분이 판매망을 확대하지 못하고 고객유치 한계에 부닥쳐 좌절한다. 정부·지자체·공공기관부터 국내 중소벤처기업의 제품·솔루션·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시험 구매·체험 후 1~3차 피드백을 해당 기업에 제공하고 민간에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나아가 국내 레퍼런스를 발판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국내 중소벤처기업들의 제품을 도입하는 중견·대기업에는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외산보다 가격적 기술적 경쟁력이 부족한 토종 중소벤처기업들이 대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에 다가갈 수 있도록 장기적 지원을 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코로나19 팬데믹이 맞물리며 전 산업 분야에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다. 제조업 등 전통산업 분야에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 혁신기술을 융합해 글로벌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중소벤처기업 육성에 국가 미래가 걸려 있다.

대한민국 경제는 1970년대 이후 약 50년간 대기업 주도의 압축성장을 이어 왔다. 그러나 국내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지난 5년 창출한 일자리만 140만개에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3%다. 중소벤처기업이 살아야 대한민국 경제와 일자리가 살아난다. 차기 정부는 중소벤처기업이 고사하지 않고 이상적으로 엑시트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중장기 지원을 강화해야한다.

정연규 그립 대표 ceo@gr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