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기업 투자 큰 손 된 운용사들…리스크 부담에 발 빼는 VC
입력 2022.01.05 07:00
    운용사, 수수료 비즈니스 어려움 겪으며 직접투자로 외연 확대
    성장성 큰 초기기업 주요 투자대상…단일투자에도 자금 대규모
    초기기업 창업가들 사이 인기 끌어…LP 보고 없는 빠른 절차 이점
    지분율 10% 육박하기도…초기시장 기존주류 VC들은 리스크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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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공격적인 자기자본 투자(PI)로 초기기업 보유 지분을 늘리고 있다. 펀드 시장 침체로 수수료 비즈니스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직접투자로 외연이 확대, 성장성이 큰 초기기업이 주 대상이 됐다. 초기기업 투자 시장의 기존 주류가 돼 왔던 벤처캐피탈(VC)들도 이들의 커진 존재감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이들을 리스크로 판단한 일부 VC들이 계획한 투자를 무산시키는 사례도 최근 종종 있었다는 설명이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자기자본을 적극 활용해 대규모 자금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PI에 나서는 투자사들이 다수 나오고 있다. 투자자문사 및 유사 투자자문사(부티크)들의 약진이 특히 주목된다. 출자 규모만 최소 100억원 이상으로 500억원을 넘기는 곳도 많다는 설명이다. 

      주요 투자 대상은 초기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직접투자로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은 환경이란 분석이 많지만 일부 운용사들은 단일 투자에도 대규모 투자금을 척척 투입시키고 있다.

      이익 상당부분을 배당하고도 적립된 잉여금이 최대 2000억원에 달하는 곳도 있다. 한 운용사의 경우 'IR하면 바로 쏴줄 정도로 자본금이 막대하다'는 소문이 창업가들 사이에 자주 오르내리기도 했다. 창업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컴플라이언스나 기관투자자(LP) 서류보고 등 투자 기간이 다소 오래 소요되는 일반 투자사 대비 이들의 투자 절차는 간결하다는 이점이 있다. 

      회사당 보유 지분율이 10% 이상 수준에 육박하는 곳도 다수다. 투자를 유치한 기업들이 후속 라운드를 잇따라 개시하면서 다수 벤처캐피탈(VC)도 이 같은 내용의 주주명부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부 VC의 경우 일부 운용사들의 높은 지분율이 투자 리스크가 될 수 있다 판단, 거래를 최종 무산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VC들은 그간 초기기업 투자시장의 주류가 되어 왔던 만큼 운용사들의 커진 존재감에 특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형 VC 심사역은 "요즘 초기기업들은 펀딩 규모도 크고 빈도도 높다 보니 주주명부가 점점 길어지는 느낌이다. 펀드가 아닌 직접투자 형태다 보니 걸러내기도 쉽지 않은 면이 있고, 투자규모가 큰 곳들은 대체로 중복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후속 투자자 입장에서 '리스크 덩어리'로 보이기도 한다. 정체를 알기 어렵단 점도 있지만 지분규모도 커 향후 목소리 내기도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일부 있다. 하반기 이 같은 이유로 투자를 무산시키는 VC 사례가 왕왕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운용사들이 대거 직접투자로 돌아선 데엔 수수료 수익 의존도를 탈피하려는 행보와 연관이 있다. 

      투자조합 결성을 위해선 의무적으로 수탁은행을 지정해야 하지만 옵티머스와 라임운용 사태 이후 수탁사의 감시 의무와 책임이 강화되며 설정이 까다로워졌다. 이에 판로 확보가 어려워진 운용사들은 자기자본을 활용한 고유계정 투자 위주로 움직이기 시작한 상황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에 세워진 운용 및 투자자문사들이 오랜 업력동안 부침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투자 성과를 톡톡히 봤다. 최근 수탁이 막히면서 귀찮은 영업 대신 넉넉한 자본금 기반으로 투자하는 쪽으로 돌리는 곳들이 상당수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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