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전고체 배터리 스타트업에 `보험용` 투자행렬

원호섭 기자
입력 : 
2021-11-02 17:32:18
수정 : 
2021-11-02 19:30:00

글자크기 설정

완성차업체들 先지분투자
스타트업 장밋빛 전망은 논란
사진설명
2011년 미국 최대 완성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은 배터리 스타트업 '엔비아 시스템'과 한번 충전에 주행거리 300km 이상 가는 배터리 개발에 나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GM 볼트에 적용한다는 구체적 계획까지 밝혔다. 10년 전만 해도 배터리 한번 충전시 이동할 수 있는 주행거리는 150km 수준이었던 만큼 300km 주행 가능한 배터리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하지만 2013년에 GM과 엔비아 시스템의 협업은 무산됐다. 엔비아 시스템은 시제품까지는 공개했지만 양산에 성공할 기술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최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꿈의 전지'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스타트업에 잇따라 투자하면서 업계에서는 GM과 엔비아 시스템의 과거 사례가 회자되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전고체 전지 양산 시점을 최소 10년 뒤로 보고 있는데 최근 등장한 벤처기업들이 2023~2025년에 양산이 가능하다는 장밋빛 계획을 발표하고 있어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를 비롯해 GM, 폭스바겐, BMW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앞다퉈 미국의 전고체 전지 스타트업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있다. '솔리드파워'라는 회사에는 현대차와 한온시스템, 포드, BMW 등이 투자했으며 '퀀텀스케이프'에는 폭스바겐, '솔리드에너지시스템(SES)'에는 GM과 중국 상하이차, 현대차, SK 등이 각각 투자했다.

최근 현대차·기아는 '팩토리얼 에너지'라는 또다른 전고체 전지 벤처기업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대부분 대학 연구실에서 전고체 전지와 관련된 기술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창업한 기업들로 2023년 공장을 짓고 2025년부터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는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아직 전고체 전지의 가격과 성능이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대체할 만큼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재 전고체 전지 벤처기업들이 이야기하는 기술 대부분은 과거 고안됐던 것"이라며 "실험실에서는 작동할지 모르지만 전기차용으로 크게 만들 경우에는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고 안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기술로 이를 극복하고 양산까지 하려면 최소 1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고체 전지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 토요타는 최근 전고체 전지를 탑재된 차량을 공개한바 있다. 이런 토요타 조차 2025년에 전기차가 아닌 '하이브리드차'에 전고체 전지를 적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 정경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에너지저장연구단장은 "실제 전고체 전지 상용품이 나왔다 하더라도 이를 전지 형태로 만들려면 수년이 걸리고, 자동차에 탑재한 뒤 테스트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자동차 업계에서는 부품 하나 바꾸는데도 수많은 검증이 필요한데 전고체 전지를 단시간 내에 바꿔 2025년부터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투자 업계에서는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전고체 전지 기업 투자를 일종의 '보험용'으로 보고 있다. 투자 과정에서 벤처기업이 보유한 기술들을 습득하는 과정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강훈모 하나벤처스 이사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고체 전지 벤처기업에 하는 투자는 일종의 포트폴리오 기반의 전략적 투자"라며 "10개에 투자해 1개만 성공해도 소위 말하는 '대박'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고체 전지 완제품은 아니더라도 기술적 측면에서 분명 도움될 것이 있다고 판단했기에 수천억원의 돈을 투자했을 것"이라며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전쟁이 그만큼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원호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