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發 20조 기업 매물 쏟아진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금리 인상 기조가 본격화하자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보유 중인 기업을 매각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면 인수자의 조달 비용 부담이 커져 높은 가격을 받기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PEF들이 보유한 매물을 서둘러 쏟아내면 연말 인수합병(M&A) 시장에 ‘큰 장’이 설 것으로 전망된다.

4일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전문매체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PEF가 경영권을 보유한 기업 가운데 매각 절차가 진행되고 있거나 준비 중인 기업의 총 매각가격은 20조원에 달한다.

국내 M&A 역사상 최대 몸값으로 평가되는 한온시스템(한앤컴퍼니 보유·예상가격 8조원)을 비롯해 △바디프랜드(VIG파트너스·3조원) △현대LNG해운(IMM PE·5000억원) △버거킹(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4000억원) △투썸플레이스(앵커에쿼티파트너스·3000억원) 등의 기업이 PEF 손을 떠나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어피너티 등이 보유하고 있는 모던하우스, 쌍용C&E, 락앤락 등 조(兆) 단위 기업들도 내년 초까지 M&A 시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PEF들이 매각 작업을 서두르는 데는 금리 인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투자은행(IB)업계는 보고 있다. 코로나19로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자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잇달아 긴축 카드를 꺼내고 있다. 한은은 지난 8월 말 기준금리를 연 0.75%로 0.25%포인트 높였고 연내 추가 인상도 예고했다. 미국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PEF는 금리와 투자 기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PEF는 인수대금 대부분을 빚으로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 금리가 오르면 이자 비용이 증가한다. 유동성이 사라지면 인수자들도 자금 압박이 심해져 ‘제값’을 쳐주기 힘들어진다. PEF의 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IB업계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상반기처럼 공격적으로 M&A 시장에 뛰어들긴 쉽지 않은 환경”이라며 “PEF들이 보유한 기업을 연말께 내놓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