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경제에 대한 공격이 거세다. 공과 과를 합리적으로 논의하기보다는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려서 아쉽다. 사회적경제는 정부나 시장 한쪽만의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등장했다. 저성장 시대에 그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로운넷>은 긴급진단 시리즈를 통해 사회적경제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 안겨준 성과를 정리하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올해 초부터 투자 생태계 주요 이슈였던 ‘ESG’. 기업의 환경(Environmental), 사회적 책임(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해 투자해야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논의가 뜨거워졌다. 실제로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지난해 ESG 요소 도입 여부를 자산 운용에 반영하겠다 선언하고, 구체적으로는 화석연료 매출이 25%를 넘는 기업은 투자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본시장의 이러한 변화는 기업을 움직인다. 이전에는 기업들이 소위 ‘나쁜 짓’을 하고도 사회 공헌으로 덮어버리면 그만이었다면, 이제는 운영 과정 자체에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고려 대상이 된 거다.

이러한 ESG투자는 ‘사회적금융’의 한 부분이다. 사회적금융이란 재무적 이익과 함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추구하는 금융을 일컫는다. 좁게는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한 대출과 보증부터, 넓게는 임팩트투자 같은 ESG투자와 사회책임투자까지 포함한다. 보조·기부 행위가 아니라, 투자·융자·보증 등 회수를 전제로 한다는 게 특징이다.

사회적금융의 개념./출처=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사회적금융의 개념./출처=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제도화 초석 마련 후 3년...자금 공급으로 뒷받침

정부도 사회적금융 필요성을 인정하고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지난 2018년 2월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발표 내용은 사회가치연대기금 조성 지원, 사회적금융중개기관 육성 및 민간투자자·금융기관의 참여 확대 추진 등을 골자로 했다.

활성화 방안 발표 이후, 공공부문과 은행권의 공급 자금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8년에는 8월 말까지 1051억원이 사회적경제기업 823개사에 대출·보증·투자 방식으로 공급됐다면, 올해 상반기의 경우 3179억원이 1655개사에 공급됐다. 은행권은 훨씬 더 많이 늘었다. 2018년 상반기 대출 실적 약 17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대출잔액은 1조를 넘겼다.

건전한 생태계를 위해 금융기관이 자금을 공급할 만한 사회적경제기업을 발굴·평가할 수 있게 돕는 시스템도 최근 마련됐다. 지난해 신용보증기금이 ‘사회적경제기업 평가시스템’을 구축해 무료로 제공 중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나오는 평가보고서는 전통적 재무평가 위주가 아닌, 사회적 가치 실현을 지속할 수 있는 조직인지를 세부 내용과 함께 10개 등급으로 산출해준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평가시스템 활용기관은 현재 30개, 사회적금융기관의 활용 건수는 누적 100건이다. 예를 들어 충청남도는 사회적경제기금 융자지원 사업에 해당 시스템을 활용 중이다.

신용보증기금의 사회적경제기업 평가시스템./출처=신용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의 사회적경제기업 평가시스템./출처=신용보증기금

십시일반 ‘금융연대’부터 민관협력 등 새로운 모델 등장

민간에서 사회적금융은 사회적경제기업이 십시일반해 자조기금을 모아 서로 금융 지원을 해주는 형태부터 ESG요소를 고려한 투자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십시일반 했던 게 좋은 예다.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다 함께 위기 극복 공동행동’은 이익공유와 급여연대 방식으로 재난연대기금을 모아 코로나19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회적경제조직에 1000만원 이내의 긴급운전자금 대출과 기부 등을 실행했다.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중심으로 조성된 ‘코로나19 대응본부’는 사회적경제기업 물품 선(先)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오마이컴퍼니’에서 크라우드펀딩을 열었다.

코로나19에 금융으로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 함께 위기 극복 공동행동’.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조직, 시민단체, 기업, 공공기관 등이 매출 절벽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료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선구매하고 긴급운전자금을 지원하는 구심점이 됐다./출처=다 함께 위기 극복 공동행동 웹사이트.
코로나19에 금융으로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 함께 위기 극복 공동행동’.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조직, 시민단체, 기업, 공공기관 등이 매출 절벽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료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선구매하고 긴급운전자금을 지원하는 구심점이 됐다./출처=다 함께 위기 극복 공동행동 웹사이트.

효율성을 위해 민과 관이 협력하는 사회적금융 모델도 새로 등장했다. 사회투자기금, 사회성과보상사업(SIB, Social Impact Bond) 등은 서울시에서 낳은 대표적인 혁신 사례다. 도매기금 성격을 띠는 사회투자기금의 경우 원래 위탁 운용했지만, 지방기금법이 바뀌고 나서는 서울시가 직접 관리한다. 지금은 서울시가 매년 수행기관으로 사회적 금융기관을 직접 모집·선정하고, 그 기관에 기금을 나눠 빌려준다. 선정된 기관은 빌린 기금을 사회적경제기업에 융자한다. 대손 위험은 수행기관의 몫이다.

SIB는 행정비용을 전혀 낭비하지 않고 사회적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을 민간자본으로 일단 실행하고, 사업 성공 후 일괄 보상받는 방식이다. 성과를 거둬야만 돈을 주므로 정부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다. 지난 2월 서울시에서 첫 성공 사례가 나왔고, 그 뒤를 이어 현재 2호 SIB 사업이 진행 중이다.

전국 단위로는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사회적금융 도매기금으로 활약 중이다. 정책자금과 민간 투자금을 결합해 사회적경제 현장에 공급한다. 임팩트펀드에 출자해 사회적경제기업 성장을 돕거나, 지역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크리에이터에 낮은 금리로 대출하거나, 시민자산화 사업 등 사회목적 프로젝트에 출자하는 등 다양한 금융 방식으로 소셜임팩트를 창출한다.

류인선 임팩트스퀘어 실장은 “관이 모두 도맡아 하는 게 합리적이고 적절한 판단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며 “다양한 맥락을 알고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게 민관 협력관계의 유의미성”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주도 사회적금융 한계...성과 측정 방식 발달해야

최근에는 투자사를 중심으로 임팩트투자가 주목을 받으며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가 투자받을 길이 넓어지고 있다. 소풍벤처스, 크레비스파트너스, 임팩트스퀘어, MYSC 등 ‘임팩트투자사’를 자처하는 대표적인 기업들도 활동 중이다.

다만 여전히 대부분의 자금이 정부로부터 공급되는 정책자금에 기반한다는 점은 한계다. 대출도 신용대출보다는 담보대출 위주이며, 그것도 규모가 큰 사회적경제기업에 빌려주기 때문에 많은 기업이 접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민간 자본이 축적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이는 ‘사회연대신협’이라는 단체신협 설립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이상진 한국사회혁신금융 대표는 "이제는 정책자금으로 자금 공급을 늘렸던 기존 사회적금융 정책을 넘어 새로운 어젠다가 필요하다"며 “사회적금융 내에서는 그간 자조 공제기금 마련 같은 노력이 있었다. 사회연대신협은 이를 확대해 예금을 취급할 수 있는 기관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사회연대신협이 만들어지면 사회적경제기업과 종사자의 은행 역할을 할 수 있다./출처=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사회연대신협이 만들어지면 사회적경제기업과 종사자의 은행 역할을 할 수 있다./출처=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평가와 측정 방식 고도화도 장기 과제다. 지난해 사회적 금융 포럼이 수행한 ‘2020 사회적 금융 서베이’에서 사회적 금융 기관들은 향후 5년간 사회적 금융 시장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기로 ‘임팩트 워싱’을 꼽았다. 임팩트 워싱을 극복할 구체적 접근은 이 임팩트를 실제로 측정, 공시하는 방안이라는 데 의견이 모이며, 각종 사회가치 평가 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열린 한국법제연구원 7차 ‘사회적가치 법제포럼’에서 김정욱 KDI 규제연구센터 센터장은 “기존 금융기관의 가치와 기준 그리고 전통적 방식의 성과평가는 제약이 있으므로,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와 금융기관의 평가기준에 어떻게 녹여낼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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