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 /  사진=신경훈 기자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 / 사진=신경훈 기자
‘루닛 엄마’, ‘문스터치’….

모두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를 가리키는 별명이다. ‘루닛 엄마’라는 별명은 문 상무의 첫 투자기업인 인공지능(AI) 진단기업 루닛을 향한 그의 각별한 애정 때문에 루닛 직원들이 붙여줬다. 문스터치는 투자 기업에 대한 열정적인 사후관리를 두고 붙은 별명.

별명으로 미뤄 알 수 있듯 문 상무는 ‘적극 관리형’ 벤처캐피털(VC) 심사역이다. 문 상무는 “리드 투자를 주도한 VC 심사역이라면 당연 그 기업의 든든한 우군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 첫 VC 심사역
현재 벤처캐피털업계에서 활동 중인 MD 출신 심사역은 총 11명. 이중 첫 주자가 문 상무다. 문 상무는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검진센터에서 2016년 인터베스트로 둥지를 옮기며 투자업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마음은 1년 먼저 투자업계로 향했다. 2015년 한 해 동안 만난 헬스케어 관련 벤처기업 수는 무려 50여 개.

문 상무는 “박사학위를 하던 시절 유전자가위(CRISPR Cas9)나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같은 기술을 업은 벤처기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VC로 자리를 옮겨 직접 투자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병원에 다니면서도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을 공격적으로 만나며 (투자업계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설명했다.

문 상무가 루닛의 설립자인 백승욱 의장을 만난 시기도 이때다. 투자업계 입문에 대한 결심을 슬슬 굳히던 2015년 가을이었다. 루닛은 카이스트(KAIST) 전자과 출신들로 AI와 머신러닝, 반도체 설계가 전공이던 사람들이 모여 창업한 기업이다.

당시 루닛은 문 상무에게 두 가지의 확신을 줬다. 첫째는 의사가 헬스케어 기업의 소비자인 만큼 소비자 시각에서 기업을 보는 심사역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다.

문 상무는 “루닛의 AI 기반 영상진단 기술의 사용자는 의사”라며 “의사 입장에서 볼 때 사용자 경험(UX)이 구매할 의사가 생길 만큼 매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령 그는 “의사는 스스로의 정확도가 100%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99%나 99.9% 정확도의 진단기기는 믿지 못하는 심리가 있다”며 “99.99% 이상의 정확도를 제안하는 루닛의 서비스는 의사 입장에서도 이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확신은 의사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업을 도울 수 있겠다는 것이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문 상무(당시 교수)는 루닛에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방암 엑스레이 사진 1만 장이 필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 루닛은 여러 병원에서 수집한 영상을 보유하긴 했으나 촬영 방식 등이 통일되지 않아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낮았다.

문 상무는 “당시 신촌세브란스 영상의학과에 있던 김은경 교수님(현 용인세브란스병원 부원장)을 설득해 방대한 데이터를 루닛과의 공동연구에 열어주었다”며 “덕분에 루닛은 2016년 AI로 방사선 이미지를 분석해 암 유무를 진단하는 기술을 벤처기업으로선 세계 최초로 북미영상의학회(RSNA)에서 발표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연 덕분에 루닛은 문 상무가 처음으로 투자한 기업이 됐다. 문 상무는 인터베스트를 거쳐 2019년 IMM인베스트먼트에 합류해 루닛에 총 142억 원을 투자했다.

어떤 기업에 투자하나
문 상무는 루닛 외에도 다양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에 투자했다. 오름테라퓨틱과 스파크바이오파마, 넥스트바이오메디컬, 미토이뮨테라퓨틱스, 휴레이포지티브 등이 대표적이다.

오름테라퓨틱은 LG생명과학(현 LG화학) 연구원과 사노피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을 지낸 이승주 대표가 설립한 신약 벤처기업이다. 차세대 항암약물접합체 플랫폼(AnDC) 기반 항암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스파크바이오파마는 박승범 서울대 화학부 교수가 설립한 회사로 저분자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구축해 효율적인 합성신약 개발에 나섰다. 항암제 후보물질과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 등을 개발 중이다.

넥스트바이오메디컬은 국내 최초 내시경용 지혈제를 개발해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도 진행 중이다. 코스닥시장 상장을 위한 기술평가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구강점막염 치료제를 개발하는 미토이뮨테라퓨틱스는 FDA로부터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아 임상 2상을 앞두고 있다. 휴레이포지티브는 만성질환 관리 플랫폼을 개발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다. 보험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B2B 비즈니스를 확대하고 있다.

투자할 기업을 어떤 기준으로 고르냐는 질문에 문 상무는 “설립자(대표)를 최우선으로 검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바이오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라며 “결승점은 기업공개(IPO)가 아니고 IPO 이후에도 기업을 운영해야 하는 만큼 바이오 기업을 창업하게 된 단단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령 신약 개발의 성공률은 매우 낮고, 언제든 임상 단계에서 실패할 수 있는 만큼 바이오 기업은 부침을 겪기 마련인데, 이 같은 난관을 넘어서기 위해선 반드시 대표의 확고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다음으로 기술적인 차별성을 강조했다. 단 기업이 최신 기술을 반드시 보유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첨언했다.

문 상무는 “<네이처>, <사이언스>에 실리는 논문은 혁신적이고 가장 최신 기술일 수는 있어도 재현하기가 까다로울 수 있고, 스케일업이 어려울 수도 있다”며 “최신 기술의 사업화는 해외에선 일부 가능하지만 국내 환경은 아직 이르다”라고 말했다. 또 “최첨단은 아니더라도 이 기술을 응용해 문제를 세련된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는 기업을 오히려 더 눈여겨보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가령 오름테라퓨틱이 보유한 AnDC 기술은 기존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 기술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것으로 꼽힌다. 오름테라퓨틱은 표적 단백질 분해(TPD) 기전을 적용한 AnDC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항암 신약 파이프라인을 개발하고 있다.

투자 포트폴리오를 신약과 디지털 헬스케어로 구분하면 VC업계 평균 대비 디지털 헬스케어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편이라고 했다. 신약과 디지털 헬스케어에 투자하는 VC업계 평균 비중이 각각 7 대 3이라면, 문 상무는 5 대 5로 디지털 헬스케어에 투자하는 비중이 더 높다. 문 상무는 “병원 시스템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것은 물론 사용자(의사)로서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게 내 강점이라는 생각에 디지털 헬스케어에 좀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여정’이 브랜드가 됐으면 하는 바람
최근 루닛은 후속투자를 유치하며 AI 기반 영상 진단에서 동반진단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신약개발 현장에서는 품목 허가 승인을 높이기 위해 약효 유무를 알려주는 동반진단 기업과의 협업이 한창이다.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미리 선별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하면 성공 확률이 2배 이상 뛰기 때문이다.

사업영역을 동반진단으로 넓히면서 투자업계가 루닛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글로벌 제약사와의 동반진단이 가시화될 경우 국내 AI진단 기업 대비 2~3배 이상의 기업가치를 쉽게 달성할 수 있으리란 예측도 나온다. 문 상무는 “바이오 기업의 목표는 IPO가 아닌 지속적인 성장이라는 생각에 동반진단이라는 차기 목표를 세우고 공격적으로 투자금을 더 태웠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오 기업을 상장시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장 이후로도 잘 성장하는 기업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상무는 기업과 투자자 사이의 ‘통역사’로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투자한 기업 휴톰의 키워드를 ‘수술용 내비게이션’으로 잡았다. 본래 이 회사의 사업 아이템은 ‘내시경 영상치료 계획 소프트웨어’로 의학 관련 배경이 없는 투자자들에겐 생소할뿐더러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그는 “기업과 투자자 사이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의사 출신 VC 심사역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문 상무는 자신의 이름이 브랜드가 되는 것이 투자자로서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투자자 목록 중에 올린 자신의 이름 석 자가 기업에 대한 신뢰를 주는 브랜드가 됐으면 한다는 뜻이다.

그는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는 비상장기업 당시 한국투자파트너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KB인베스트먼트 등 내로라하는 VC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상장 전은 물론 이후에도 투자자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얻었다”며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VC 심사역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투자 고수 열전] 국내 1호 MD 출신 심사역,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 “단단한 신념 있는 기업 골라 투자할 만한 회사로 키워야죠”


이우상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