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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펀드에서 배울 점은…세상 바꾸는 기업 찾아 국경 초월한 투자

  • 노승욱 기자
  • 입력 : 2021.08.02 16:53:26
“일본에서 ‘마지막 버블맨’이 왔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불과 수년 전까지 손정의 회장을 두고 이 같은 조롱이 떠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억원 투자도 쉽지 않은 실리콘밸리에서 손 회장이 비전펀드를 통해 조 단위로 투자를 하며 스타트업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비웃음은 위워크 상장 실패로 손 회장이 “너덜너덜해졌다”고 토로했던 지난해 정점을 찍었다.

올 들어 상황이 반전됐다. 쿠팡이 뉴욕 증시에 상장하며 한때 100조원의 기업가치를 달성하고 ‘동남아 우버’ 그랩도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며 비전펀드 수익률이 수직 상승했다. 비전펀드를 운영하는 소프트뱅크는 2019년 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에 ‘일본 기업 역사상 최대 적자(15조7000억원)’를 기록했지만, 2021년 회계연도에는 거꾸로 사상 최대 순이익(51조원)을 기록했다. 1년 만에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을 오간 셈이다.

한쪽에서는 ‘세계적인 증시 버블에 따른 일시적 성과’라며 평가 절하한다. 그러나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손 회장이 VC의 성공 방정식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손 회장의 투자법은 워런 버핏의 그것과 대척점에 있다.

워런 버핏은 코카콜라 등 꾸준히 수익을 내는 상장사 위주로 투자한다. 반면 손 회장은 생존 여부도 예측하기 어려운 비상장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1~2년 단위로 보면 당연히 후자의 수익률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10~30년 주기 큰 흐름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익명을 요구한 VC 대표 A씨는 “손 회장도 코로나19 사태는 예견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향후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바뀌고 AI가 모든 산업에 침투하는 것은 자명하다. 손 회장은 이런 ‘시대 전환’에 베팅했고, 그의 전망이 코로나19 사태로 더 앞당겨졌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손 회장도 지난 3월 소프트뱅크그룹 결산 설명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보 혁명 진전을 등에 업고 인터넷 산업은 1994년부터 올해까지 연평균 34%씩 총 2000배 성장했다. 즉 자본가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하는 만큼 보상도 크다. 나도 야후, 알리바바 투자를 통해 두 번의 큰 잭팟을 터뜨렸다. 하지만 AI를 통한 정보 혁명은 아직도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손 회장을 ‘버블맨’이라며 비웃던 실리콘밸리도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수천억원, 수조원 단위 투자가 잇따르며 유망 스타트업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제2벤처 붐이라며 떠들썩한 올 상반기에도 국내 VC로부터 300억원 이상 투자를 유치한 기업이 4개사에 불과한 수준이다.

▶“비전펀드보다 6배 큰 국민연금, 벤처 투자 강화를”

임정욱 대표는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손 회장과 만났을 때 비전펀드 2호는 한창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나라 국부펀드가 비전펀드에 출자하거나 비슷한 콘셉트로 자체 투자를 했어야 했다. 한국 펀드라고 국내 기업만 투자하지 말고 해외 유망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하며 글로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VC 대표 A씨도 같은 생각이다.

“국민연금은 비전펀드보다 6배나 큰, 세계적인 규모의 펀드다. 그러나 안정성만 강조하며 소극적으로 투자해 수익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납입 인구 감소로 수십 년 내 고갈이 불가피하다. 야놀자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린 싱가포르투자청(싱가포르 국부펀드)처럼 펀드의 일부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해야 한다. 현재 증시 버블이 꺼질 때가 기회다. 이에 대비해 지금부터 베트남 같은 고성장 신흥국의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0호 (2021.08.04~2021.08.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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