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붐, 닷컴버블과는 달라…민간 주도 모태펀드 활성화할 것"
“지금 한국 벤처업계는 유례없는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오히려 벤처캐피털(VC)업계에 더 많은 민간 자본이 유입돼야 합니다.”

지성배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사진)은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벤처붐이 지속 가능하려면 투자가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지 회장은 지난 2월 제14대 VC협회장으로 취임했다. 삼일회계법인과 CKD창업투자를 거쳐 국내 최대 VC 중 하나인 IMM인베스트먼트를 이끌고 있는 벤처투자 전문가다. IMM인베스트먼트는 쿠팡, 우아한형제들, 크래프톤 등 다양한 기업에 투자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메이커로 불린다.

민간 주도 벤처투자 활성화 필요

지 회장은 취임하면서 민간 주도의 벤처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운용사 관점에서 보면 정부가 주도하는 모태펀드는 수익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모태펀드에 민간 자본이 유입되면 조금 더 수익성이 좋은 쪽으로 운용할 수 있는 유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협회 차원에서도 올해 민간 모태펀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외부 기관 두 곳에 연구용역을 맡겨둔 상태”라고 말했다.

지 회장은 이를 위해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봤다. 조건부 지분전환계약(컨버터블 노트)이나 벤처 대출(venture debt) 같은 제도를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컨버터블 노트는 우선 기업에 투자를 집행한 뒤 향후 성과가 나오면 전환가액이 정해지는 일종의 ‘오픈형 전환사채’다. 벤처 대출은 금융권이 벤처기업에 돈을 빌려준 뒤 일정 수준의 신주인수권(워런트)을 받는 제도다. 지 회장은 “두 제도 모두 미국에서는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며 “지난해 제정된 벤처투자촉진법에 컨버터블 노트와 비슷한 조건부 지분인수계약(SAFE) 제도가 반영된 만큼 나머지 제도들도 이른 시일 내에 도입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 투자 열기 과열 아냐

벤처기업에 대한 가치 평가(벨류에이션)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때처럼 과도하게 높은 게 아니냐는 지적에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투자를 받으려는 쪽과 하려는 쪽 모두 양적·질적으로 많이 발전했다고 봤다. 지 회장은 “20년 전에는 기업과 투자자 모두 ‘초보자’였다”며 “지금 창업자들은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돼 있고, 투자자 역시 그간의 경험을 통해 전문성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지 회장은 쿠팡의 사례를 들며 “그동안 저평가됐던 국내 기업들의 가치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이라도 ‘확장성’을 기반으로 한 성장 가능성이 있다면 높은 기업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다. 그는 “쿠팡의 높은 몸값에는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사업 모델이 플랫폼을 통해서 발휘될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이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간 자본의 확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동안 국내 유니콘 기업에는 해외 VC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고 지적했다. 지 회장은 “유동성 확대로 이제 순수 국내 자본으로도 유니콘 기업이 탄생할 기반이 마련됐다”며 “다만 아직 많이 부족한 수준인 만큼 민간 자본이 더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우/황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