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차등의결권과 벤처기업 활성화

2021-04-27 13:25:18 게재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겁다. 국내 벤처업계뿐만 아니라 재계와 정치권에서는 차등의결권을 도입하지 않아 쿠팡과 같이 좋은(?) 기업을 미국 시장에 빼앗겼다며 우리나라도 빨리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쿠팡은 차등의결권 이유만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한 것일까? 차등의결권이 진짜 벤처기업을 활성화 할 수 있을까?

차등의결권이란 1주당 의결권 수를 복수로 부여할 수 있는 제도로 창업주나 오너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줄 수 있다. 쿠팡의 경우 김범석 의장이 1주당 29표의 의결권을 받았다.

그런데 쿠팡의 미국증시행은 애초 예정된 일이었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 의장 외에도 쿠팡의 최고기술책임자와 최고재무책임자 등 주요 임원들은 모두 미국인이다. 주요 투자자는 일본 비전펀드이며 쿠팡의 자금조달방식과 경영, 보상체계 등은 미국식 관행을 따르고 있다. 이런 기업이 뉴욕증시에 상장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차등의결권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국내 벤처·스타트업계는 지난 21일 복수의결권 도입을 위한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며 이를 허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상법이 벤처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비판했다. 반면 이날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는 일제히 성명서를 내고 ‘복수의결권 도입은 벤처기업의 육성 및 성장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상법 상 주주평등의 원리를 훼손하고 대주주 지배력 집중을 심화시키며, 무능한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보호로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차등의결권 도입은 세계적으로 자연스러운 추세가 아니다. 제도상 도입은 했지만 운영을 까다롭게 해 실제 이용 사례는 많지 않다. 독일과 이탈리아처럼 차등의결권을 도입했다가 없앤 나라들도 있다. 특히 재벌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아직도 만연한 우리나라에서는 더 큰 위험이 우려된다.

‘2020년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경우 정부 정책지원금으로 추가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또 창업 후에는 기업공개(IPO)를 못하는 어려움보다 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의 불공정거래행위와 불공정한 경쟁시장이 벤처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벤처기업의 성장을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정부차원에서의 벤처·창업 관련 지원 정책 등이다. 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경영권 세습 사다리로 악용될 우려가 있는 차등의결권보다 공정경제 구축이 먼저 아닐까?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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