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보호 안 돼 해외로 눈돌려···국내 도입해야” 목소리
세습과 지배력 남용 우려도 있어 신중해야 주장도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미국 증시 상장을 타진하는 국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이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증시 상장을 유도하기 위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창업자의 경영권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제도가 국내에 없다는 점이 해외 시장 문을 두드리게 한 요인 중 하나라는 주장이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업계 안팎에서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이 화두가 되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특정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국내에서는 1주에 하나의 의결권이 부여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해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차등의결권이 이슈가 된 배경에는 국내 유니콘 회사들의 미국 상장 시도와 관련이 있다. 주로 국내에서 유통 사업을 하고 있는 쿠팡은 상장일인 지난달 11일 시가총액 100조원을 기록하며 미국 나스닥 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상장된 법인이 미국 델라웨어에 소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국내에서 사업하는 기업이 한국 시장이 아닌 미국 시장에 상장된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다수였다.

특히 이들은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주된 이유로 차등의결권을 꼽고 있다. 실제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이번 상장을 통해 1주당 29배의 의결권을 갖는 ‘클래스 비’(Class B) 보통주 100%를 부여받았다. 김 의장은 일반주식(클래스A 보통주) 지분은 없지만 클래스B 주식을 통해 76.2%(최근 지분 매각 반영)의 의결권을 갖게 됐다. 만일 국내에서 상장을 했다면 경영권 방어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쿠팡뿐만 아니라 마켓컬리와 두나무 등 다른 국내 대표 유니콘들도 미국 상장 추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역시 미국 상장 시도 배경에 차등의결권이 꼽히는데, 마켓컬리의 창업자인 김슬아 컬리 대표의 경우 2019년 말 기준 지분율이 10.7%에 불과하다. 국내 시장에 상장될 경우 경영권 유지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밖에 두나무의 송치형 의장은 지분율이 26.8%로 상장 시 지분 희석을 고려하면 절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유니콘 기업의 국내 증시 상장을 촉진시키기 위해선 국내에도 차등의결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수의 투자 유치에 나서는 벤처기업의 특성 상 창업자나 주요 주주의 지분율이 낮아지는 것은 불가피한데 이를 보호하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되레 감사나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별관계인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이 최근 시행하면서 경영권 유지가 더욱 불리해졌다는 지적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전날 보고서를 통해 “유니콘 기업의 상장은 한 국가의 자본시장 수준 및 규모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이자 세수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쿠팡과 같은 유니콘 기업의 해외 상장은 국가적 손실”이라며 “자본시장 국제화에 대응하려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차등의결권제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곳은 미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이다

현재 국회에서 비상장벤처기업에 한해 복수의결주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벤처기업육성특별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다만 대규모 투자 유치로 창업주의 보유지분이 30% 밑으로 떨어질 경우 최대 10년까지만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고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일반 보통주로 전환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차등의결권 제도의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차등의결권이 전면 허용될 경우 경영 세습과 지배력 남용을 정당화할 수 있고 대규모 투자에 나선 투자자 입장에선 경영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워져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유니콘 기업의 해외 상장 역시 차등의결권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제 문제나 자금조달 이슈 등 개별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자본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선 국내 유니콘 기업들의 상장이 이뤄져야 하고 필연적으로 차등의결권 제도도 필요하다”면서도 “차등의결권제도의 그늘도 있는 만큼 차등의결권 제도의 수준과 범위 설정에 적절한 균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이 입안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최근 미국의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회사 사례. / 자료=한국상장사협의회.
최근 미국의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회사 사례. / 자료=한국상장사협의회.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