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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대학에 벤처 투자자금 ‘쏠림현상’…창업 ‘빈부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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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3-22 05:50:18   폰트크기 변경      
서울대 기술지주 전방위 활약…문제는 없나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축적의 길’에서 아이디어를 혁신으로 완성하는 힘, 스케일업(Scale-up)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발명(Invention)과 혁신(Innovation)의 거리는 무척 멀다”며 “수년간 온갖 리스크를 무릅쓰고 집요하게 스케일업 해 온 과정이 없다면, 아무리 귀하고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혁신의 바다를 건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학 기술지주회사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창업을 돕고, 스케일업을 통해 성장 기반을 만드는 강력한 지원군이다. 여기에 대학의 브랜드 파워가 더해지면 그 힘은 더 강력해진다. 서울대 기술지주회사가 대표적이다.

 서울대 기술지주는 국내 대학기술지주회사 태동기인 2008년 한양대에 이어 설립됐다. 초기엔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산학협력단장이 기술지주회사 대표를 맡는 시스템이었다. 학내 보유 기술 및 특허 중 사업화가 가능한 아이템을 출자해 기업(자회사)을 만들고, 이 기업의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었다. 현재 서울대 기술지주가 보유한 자회사는 총 40개사. 이 중에는 엔젤스윙과 같은 건설 드론 플랫폼 기업도 있고, ‘약콩두유’로 유명한 밥스누 등 식품기업까지 업종도 다양하다.

 서울대 기술지주가 기존 기술지주회사의 틀을 넘어 벤처캐피탈(VC)의 영역으로 확장한 시점은 2017년 무렵이다. 현재 서울대 기술지주 대표를 맡고 있는 목승환 당시 투자전략팀장이 이를 주도했다.

 1호 펀드는 정부가 출자한 모태펀드 50%, 지주회사 자금 30%, 나머지 동문 출자금 등 약 60억원 규모로 시작했다. 이를 통해 오픈더테이블 등 15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2호 펀드부터는 민간 기업이 참여했고, 이때부터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청년창업재단 디캠프 등 전문 투자사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대 기술지주가 운용 중인 펀드는 5건이며, 지금까지 총 50건의 투자를 진행했다.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브랜드에다, 지주회사의 펀드 운용능력까지 검증받으면서 이른바 ‘서울대 기술지주 사단’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서울대 기술지주-카카오벤처스-디캠프’ 라인이 구성된 배경이다. 이들은 일단 서울대 기술지주가 투자하면 후속 투자자로 줄줄이 나선다. 창업 3년여 만에 총 100억여원의 투자를 유치한 차세대 X-선 기술 스타트업 어썸레이의 경우에도 서울대기술지주에 이어 카카오벤처스, 디캠프 등이 후속 투자자로 참여했다.

 민간 엑셀러레이터 A사 대표는 “어썸레이는 탄탄한 기술력과 탁월한 특허전략 등을 통해 압축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서울대 기술지주가 아닌 다른 대학이었다면 그 속도가 현저히 느렸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라고 전했다.

 서울대 기술지주의 힘은 일단 자회사를 창업하고 나면 최소 2∼3년을 버틸 수 있는 탄탄한 투자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씨앗 투자로 운용자금을 지원한 뒤 곧바로 중소벤처기업부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팁스(TIPS) 선정을 돕는다. 팁스는 민간 운영사가 선투자(1억∼2억원)한 기업에 정부가 △연구개발(R&Dㆍ최대 5억원) △사업화(최대 1억원) △해외 마케팅(최대 1억원) 등 최대 7억원을 연계 지원해준다. 서울대 기술지주는 총 61개 팁스 운영사 중 최다 추천권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신용보증기금의 창업기업 지원제도인 ‘퍼스트펭귄’까지 더해지면 최대 30억원의 보증과 연계 투자를 지원받을 수 있다.

 최근 서울대 기술지주는 또 하나의 막강한 신무기를 장착했다. 이달 초 국내 엑셀러레이터 중 최대 규모인 한국성장금융 벤처펀드 운용사로 선정돼 총 700억원대의 운용자산 규모를 확보했다.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후속 투자를 하는 것을 뛰어넘어 이미 성장 궤도에 진입한 스타트업까지 찾아내 전방위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업계에선 “서울대 기술지주가 VC의 단계로 확실히 넘어갔다”고 평했다.

 민간 엑셀러레이터 B사 대표는 “투자자들도 성과를 내려면 서울대, 카이스트 등이 주도하는 지주회사 창구로 쏠림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다만, 지방대의 좋은 기술과 능력있는 창업자들이 자칫 외면받는 빈부 격차가 생기는 것은 개선해야 할 점”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대학 기술지주의 분발도 요구된다. ‘기술지수 자회사 1000개’ 시대에 걸맞게 질적 성장을 위해선 ‘숫자 놀음’을 넘어 철저한 사후관리와 성과창출에 집중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대학들이 산학협력단처럼 경쟁적으로 기술지주회사를 만들고 자회사 숫자를 늘려가고 있지만 이를 내실화하지 않으면 ‘창업 거품’을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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