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이 미국 증시에서 깜짝 놀랄 만한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국내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성장 기업의 가치 재평가, 이커머스 업계 재편 등에 불이 붙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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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종가를 기준으로 계산한 쿠팡의 시가총액은 872억 달러(약 99조원)다. 국내 기업 중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다음으로 큰 금액이다.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순위 3~5위인 LG화학(051910), 네이버(035420), 현대차(005380)보다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나비효과 1. PEF 투자전략 수정 “韓 기업가치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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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일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가치 평가 이론을 다시 써야 할 판이에요.” 국내 중견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임원은 혀를 내둘렀다.
PEF는 연기금·공제회 등의 뭉칫돈을 받아서 중소·중견 기업의 비상장 주식에 주로 투자한다. 업계에서 통상 비상장 기업의 주식을 평가할 때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회사의 이익이나 자산 가치를 경쟁 기업과 비교해 적정 몸값을 매기는 방식이다.
한 PEF 대표는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사례가 많지 않다”며 “쿠팡의 사례가 거품인지 아니면 회사가 (성장) 스토리를 굉장히 잘 만들어 미국 투자자에게 먹힌 것인지, 한국 증시가 유독 저평가된 ‘코리아디스카운트’ 때문인지 지금으로선 해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쿠팡의 ‘대박’이 PEF의 투자 전략 수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지금까지 쿠팡처럼 이익을 내지 못하는 성장 기업은 PEF가 아닌 벤처캐피탈(VC)의 투자 대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앞으로 누적 운용액 97조원(지난해 말 펀드 출자 약정액 기준)에 이르는 PEF의 자금이 ‘제2의 쿠팡’을 꿈꾸는 성장 기업에 흘러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비효과 2. 국내 이커머스 업계 리밸류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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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관심사는 쿠팡 상장이 이베이코리아와 요기요 매각에 미칠 여파다.
이베이코리아는 G마켓·옥션·G9 등 오픈마켓을 운영하는 온라인 상거래 기업이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네이버, 쿠팡에 이은 3위다.
지난해 이 회사 매각설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180도로 바뀌었다. 신세계(004170), 카카오(035720) 등 주요 대기업이 관심을 보이며 몸값이 올라갈 조짐을 보인다.
배달 앱 2위 회사인 요기요의 경우 이커머스 기업은 아니지만, 배달 시장에 진출한 쿠팡의 유력 인수 대상으로 거론되며 인수전 흥행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쿠팡이 이번 상장으로 4조원(신주 발행 자금)에 이르는 투자 실탄을 비축한 만큼 요기요 인수전에 적극 나서리라는 것이다.
반대 견해도 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쿠팡이 앞으로도 적자를 무릅쓰고 자체 투자를 대폭 확대하면 이베이코리아 등은 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작지 않다”면서 “쿠팡 상장은 경쟁사 기업 가치에 디스카운트(가격 할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쿠팡은 이미 이베이코리아와 요기요 인수에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쿠팡의 성공 신화에 힘입어 해외 상장에 도전하는 후발 주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신선식품 새벽 배송’으로 유명한 마켓컬리가 대표적이다. 마켓컬리는 연내 미국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쿠팡 상장을 계기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빠른 성장세가 외국에서 주목받으며 토종 기업이 글로벌 자본시장에 진출할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나비효과 3. 증권가 이커머스 기업 다시보기
국내 증권가도 바빠졌다. 이커머스 기업 다시 보기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국내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는 최근 네이버의 목표 주가를 종전보다 26% 높은 54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쿠팡 시가총액에 견줘 네이버의 커머스 사업 가치가 너무 저평가돼 있어 이를 재평가를 했다는 것이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카카오의 경우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 기업 가치가 지금보다 최대 10조원 상승할 여력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