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유니콘 쿠팡의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두고 국부 유출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국내 1호 유니콘 쿠팡의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두고 국부 유출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기업가치가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인 비상장업체를 소위 ‘유니콘’이라고 부른다. 뿔이 달린 전설 속 동물 유니콘처럼 쉽게 볼 수 없다는 의미에서다. 창업 초기 ‘죽음의 계곡’(창업 후 3~5년 사이 도산 위기)을 넘은 뒤에도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기업만이 유니콘이 된다.

국내에도 유니콘이 존재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 유니콘은 총 20개. 미국(237개)이나 중국(121개)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그나마 어렵게 만난 ‘K-유니콘’은 각자의 목적에 의해 사업 터전인 국내를 떠나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국내 1호 유니콘’의 성공?… 과실은 해외에


쿠팡은 지난 12일(현지시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위한 신고서(S-1)를 제출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 등 현지 언론은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할 경우 기업가치가 300억~500억달러(약 33조~55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에선 호평이 이어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를 두고 “한국 유니콘의 쾌거”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쿠팡은 2014년 5월 기업가치를 10억달러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1호 유니콘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7년 만에 기업가치가 최대 55배로 불어나게 된 것이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사옥. /사진=뉴스1 이성철 기자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사옥. /사진=뉴스1 이성철 기자

하지만 동시에 혹평도 쏟아졌다. 한국에서 돈을 버는 쿠팡이 외국 자본시장으로 빠져나간다는 이유에서다. 소위 ‘코리아 패싱’ 논란. 일반 투자자는 물론 국내 증시 측면에서도 우량 기업을 유치해 시장 규모를 키울 기회를 잃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투자 차익 역시 모두 해외 자본에 돌아간다. S-1 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주요 주주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를 비롯해 ▲그린옥스캐피털 ▲세쿼이아캐피털 ▲블랙록사 ▲윌리엄 애크먼 등 외국계 투자사다. 여기에 한국 자본은 전혀 없다.

쿠팡의 상장은 이들의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위한 절차로 풀이된다. 지분 38%가량을 보유한 최대주주 비전펀드는 이미 지난해 3분기 엑시트 방침을 밝혔다. 쿠팡의 기업가치가 55조원에 이르면 비전펀드가 보유한 쿠팡의 지분 가치는 190억달러(약 21조원)로 불어난다. 투자 원금(30억달러·약 3조3000억원)의 7배에 달하는 수익이다.

쿠팡이 국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국부 유출’이란 비판도 나온다. S-1 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국내에서 119억7000만달러(약 13조3000억원)을 벌었다. 매출액 기준 국내 이커머스 업계 1위 규모다. 하지만 정작 과실은 해외 자본이 챙기게 되는 셈이다.

배민·쿠팡 ‘잭팟’… 해외 자본만 배 불린다

토종기업 키웠더니… 게르만민족된 배달의민족


여섯번째 K-유니콘인 우아한형제들도 국부 유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1위 배달앱 ‘배달의민족’(배민)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했기 때문. 인수·합병(M&A) 발표 당시 국내에서는 우아한형제들이 자영업자에게 받는 수수료로 돈을 번 뒤 외국계 시장에 통째로 넘어갔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DH는 2019년 12월 우아한형제들 지분 87%를 현금 17억유로와 신주 4000만주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1년간 양사의 기업결합을 심사한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DH에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려면 한국법인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DHK·서비스명 ‘요기요’)를 매각하라는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 DH는 곧바로 수용했고 상반기 내로 DHK를 정리할 예정이다.

창업주인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과 투자자는 9조원대 ‘잭팟’을 터뜨리게 됐다. 당초 DH의 인수 대금은 4조원대로 추산됐으나 공정위 심사를 거치는 1년 사이 DH 주가가 3배 가까이 불어나면서 변화가 생겼다. 주가 상승분을 감안하면 우아한형제들 총 인수금액은 68억유로(약 9조원)로 오른다.

수혜는 대부분 외국계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현재 우아한형제들의 주요 주주는 중국계 ▲힐하우스캐피탈(23.9%) ▲미국계 알토스벤처스(20.2%+10.7%) ▲골드만삭스(12.1%) 등 해외 투자자가 대부분이다. 국내 투자자 지분은 ▲본엔젤스파트너스 6.3% ▲네이버 5.03% 정도에 불과하다.

이번 M&A의 문제는 단순히 외국계 투자사만 배를 불린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내 배달앱 시장을 외국계 기업이 장악하는 문제도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9년 거래금액 기준 배민의 점유율은 78%다. 시장 독점적 지위를 가진 1위 사업자의 국적이 한국에서 독일로 변경되는 셈이다. 산업 주도권을 뺏기는 만큼 국내 배달앱 생태계에 미칠 영향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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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본 실종 이유는… “회수 시장 개선해야”


물론 벤처업계에선 유니콘의 기업공개(IPO)나 M&A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창업→투자→성장→투자회수→재투자’라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장기적으로 유니콘이 아닌 엑시콘(엑시트에 성공한 유니콘)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문제는 쿠팡과 우아한형제들의 사례처럼 엑시트가 재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미미한 경우다. 회수시장과 고리가 약하다 보니 재투자가 아니라 사실상 ‘유니콘 수출’만 남는 형국이다. 이런 사례가 반복된다면 국내 벤처 생태계가 질적으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쿠팡과 우아한형제들 외에 다른 K-유니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메프·에이프로젠·야놀자를 제외한 K-유니콘 대부분의 국내 자본 비중은 10%를 밑돈다. 예비 유니콘으로 꼽히는 마켓컬리나 여기어때도 대주주가 외국계 벤처캐피털(VC)이다.

업계에선 국내 벤처 자본시장의 한계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국내 VC의 영세성과 시장 규제 등으로 인해 K-유니콘이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항변이다. 특히 국내 벤처투자는 상대적으로 자금 부담이 적은 초기 스타트업 발굴과 육성에 집중돼 수백억~수천억원 단위를 붓는 ‘리드 투자자’(투자비중 30% 이상의 최우선 투자자)가 극히 제한적이다.

박태근 벤처기업협회 팀장은 “스타트업이 창업 초기 단계에서 중견 단계로 퀀텀점프하는 시기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할 국내 벤처투자 인프라가 열악하다”며 “정부 주도의 벤처투자 확대 노력이 있긴 하지만 민간 자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