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캠프는?

서울대 인근을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바꾸겠다는 설립 5년 차의 신생 벤처캐피털.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창업보육공간을 만들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투자자보다 스타트업 DNA로 스타트업과 함께 뛰고 성장하며 새로운 벤처캐피털의 모델을 만들고 있다.

국내 기술 스타트업 중 몸값 최고가는 AI 기술 기업인 ‘수아랩’이다. 지난해 미국 나스닥 상장 기업인 코그넥스에 1억9500만달러(2300억원)에 팔리면서 화제가 됐다. 2013년 설립된 ‘수아랩’을 발굴하고 초기 투자를 한 곳은 벤처캐피털 스프링캠프이다. 수아랩의 지분 9%를 가진 스프링캠프는 이 투자로 투자금의 200배인 200억원을 벌었다.

벤처캐피털(VC) 투자심사역(벤처캐피털리스트)은 이처럼 ‘될 성 부른 떡잎’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을 한다. ‘투자심사역’이라는 직업이 생소한 사람도 있겠지만 최근 대학 졸업생들이 손꼽는 유망 직업 중 하나이다. 드라마를 보면 트렌드가 보인다.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청춘들을 소재로 한 tvN의 주말드라마 ‘스타트업’은 ‘제2의 벤처’ 붐이라고 할 만큼 우리 사회 키워드가 된 스타트업 열풍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에서 ‘투자의 귀재’로 나오는 벤처캐피털 회사의 수석팀장 한지평(김선호 분)이 바로 투자심사역이다. 외제차를 끌고 한강 뷰가 보이는 아파트에 살며 억대 연봉을 자랑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은 다르다.

스타트업의 생사를 쥔 ‘쩐의 전쟁’은 치열하다. 벤처캐피털은 정부의 모태펀드나 기관투자가로 구성된 벤처펀드를 혁신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기업이 성장한 후 투자회수를 통해 수익을 낸다. 이때 ‘수아랩’처럼 성공한 투자보다 실패한 투자가 훨씬 많다.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찾고 성장을 돕는 것이 투자심사역의 역할이다. ‘매의 눈’을 기르기 위해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혁신 키워드를 찾아야 하고, 시장의 흐름을 한발 앞서 읽어야 하고, 새로운 산업에 대한 공부도 필수다. 무엇보다 밤낮으로 사람을 만나야 한다. 쓸 만한 창업가들을 찾아 네트워크를 동원하고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중에서 옥석을 골라내는 것이 투자심사역의 능력이다.

‘이상한’ 벤처캐피털

현재 국내 벤처캐피털은 150곳에 달하고 투자심사역은 1200명이 넘는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커지면서 펀드도 많아졌다. 한국 스타트업 투자정보 검색 플랫폼인 ‘더브이씨(THE VC)’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한 펀드 규모는 2019년 14조357억원에 이른다. 몇 년 전만 해도 VC 앞에 투자를 받으려는 기업들이 줄을 섰지만, 이제는 좋은 기업 앞에 VC들이 줄을 선다. 창업자들이 익명으로 VC를 평가하는 익명게시판 ‘누구머니(Nugu.Money)’ 사이트도 등장했다. 이렇다 보니 VC업계는 ‘감’ 좋고 실력 있는 투자심사역을 구하기 위해 인재 전쟁을벌이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에 있는 ‘스프링캠프’ 사무실에서 손균우 심사역을 만났다. ‘스프링캠프’는 VC업계의 일반적인 공식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VC이다. VC라기보다 스타트업 DNA가 강하다. 돈줄 쥐고 ‘라떼’를 외치는 꼰대형 VC가 아니라 스프링캠프는 함께 뛰고 땀 흘리는 ‘친구’ 같은 VC라고 할 수 있다. 손 심사역은 스프링캠프를 “스타트업과 함께 크는 VC업계의 스타트업”이라고 소개했다.

스프링캠프의 사무실은 금융회사보다 열정 넘치는 스타트업 사무실 같았다. ‘커넥트룸(Connect room)’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회의실 벽면에 큰 스프링이 그려져 있었다. ‘스프링캠프’라는 이름에 담긴 뜻처럼 스타트업이 스프링처럼 튀어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대회의실 유리벽에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상징하는 커다란 ‘J커브’ 곡선이 그려져 있다. 곡선이 뻗어나가는 쪽의 벽에는 스타트업들의 꿈인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두 마리가 그려진 그림이 걸려 있다. 특이한 것은 유니콘 머리에 뿔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유니콘이 된 사람에게 그 뿔을 그릴 기회를 줄 생각이다. 회의실 곳곳에 창업자들이 사왔다는 유니콘 인형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것 같다. 사무실 한가운데는 아예 술집이 차려져 있다. 바 뒤로 술병이 즐비했다. 그 옆 소파 위에 ‘스프링 살롱’이라고 적힌 네온사인이 빛나고 있다. 인터뷰를 멈추고 술이라도 한잔해야 할 듯한 분위기다. 이곳은 손 심사역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손 심사역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스프링 살롱’을 촬영하는 곳이다. 창업자들이 찾아와 술잔 기울이며 고민을 털어놓는 곳이기도 하다. 때론 취중 토크로 진행되는 ‘스프링 살롱’은 창업가들의 성장 스토리, VC의 투자 스토리 등을 편하게 털어놓는 토크쇼로 구독자 증가 속도가 ‘J커브’를 그리고 있다.

서울대 인근을 바꾸다

스프링캠프가 서울대 주변을 바꾸고 있다. 다른 VC들과 달리 강남이나 판교가 아닌 서울대입구역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다. 서울대 인근에 한국의 실리콘밸리인 창업밸리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기술과 인재가 모이는 곳에 실리콘밸리가 만들어진 것처럼 초기 창업 인재들이 모여 있는 서울대 인근을 스타트업 밸리로 만드는 것이 스프링캠프의 목표이다. 실제로 스프링캠프를 중심으로 스타트업들이 몰려들고, 스프링캠프가 키운 스타트업들이 인근에 자리 잡으면서 창업밸리, 일명 스누(SNU)밸리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스프링캠프는 그 목표를 위해 서울대입구역에 창업보육공간을 만들고 ‘캠프파이어’라는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지원해 선정된 창업가에게 돈도 주고 공간도 주고 네트워크도 제공하면서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VC 중에 이런 공간을 함께 운영하는 곳은 없다. “창업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 생각하니 시간과 돈과 공간이었습니다. 공간도 하나의 투자입니다. 이 공간에서 기업이 성장하고 큰 가치를 만들어내면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손 심사역의 말이다. 스프링캠프는 일종의 창업학교인 셈이다.

스프링캠프의 운용펀드는 총 2개로 520억원 규모이다. 2016년 서울기술지주회사 출신인 최인규 대표가 만든 스프링캠프는 2017년 네이버 자회사인 ‘스노우’에 합병된 후 짧은 시간에 놀랄 만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펀드는 100% 네이버 출자이다. 스프링캠프가 투자한 곳은 스타트업 대표주자로 꼽히는 ‘오늘의 집’ ‘클래스 101’ 등 130여곳이다. VC의 투자 방식은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시드 투자’에서 시작해 프리A, 시리즈 A·B·C 라운드로 진행된다. 스프링캠프는 시드 투자 전문이다. 라운드가 올라갈수록 기업을 평가할 수 있는 수치들이 많지만 시드 단계의 기업은 판단의 근거가 없기 때문에 그만큼 심사역의 역할이 크다.

심사역은 일반적으로 발굴·심사·지원, 3가지 역할을 한다. 손 심사역의 기업 발굴 능력은 투자사 리스트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창업가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고 했다. “무엇보다 좋은 창업자 주변에는 좋은 창업자들이 있습니다. 창업자들이 추천하는 창업자를 눈여겨봅니다.”

아이템보다 사람에 투자한다

그의 투자 기준은 무조건 ‘사람’이다. 아이템보다 창업 DNA가 있는 인재라면 오케이다. 그는 창업 인재의 조건으로 ‘스마트함, 끈기, 실행력’을 꼽는다. 투자를 결정할 때는 기업의 IR 자료보다 창업자 주변 사람들을 본다. 팀원도 만나고 팀 분위기도 살핀다. 창업가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가 실제로 투자를 진행한 경우를 보자. 챗봇 스타트업인 ‘띵스플로우’(이수지 대표)는 서비스를 론칭도 하기 전에 투자를 결정했다. 대표가 창업을 한 경험이 있고, 사람들이 반응하는 콘텐츠가 뭔지를 알고 있고, 그것을 서비스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띵스플로우는 현재 다운로드 300만명을 기록하며 급성장 중이다. 주류 멤버십 서비스 ‘데일리샷’은 2달 동안 전수조사하듯 창업팀들을 대상으로 창업 인재를 물어보고 다닌 끝에 만난 팀이다. 이 팀은 특이하게 투자를 먼저 제안했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서 투자를 거절했다. 2개월 후 체계적으로 정리된 사업계획서를 들고 찾아왔다. 바로 투자를 집행했다.

투자만 한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투자사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VC의 역할이다. 이때 지나친 훈수로 투자사들을 압박하는 VC도 많다. 그는 ‘사후관리’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기업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창업자 자신입니다. 얼굴 안 보이는 것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투자자의 역할은 창업자의 시야가 좁아질 때 한마디 거드는 정도가 마지노선 아닐까요?” 대신 그는 창업자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는 밤낮 안 가리고 만난다.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6일은 약속이다. “맨날 고민만 들어주다 보면 힘들기도 하지만 투자한 스타트업이 성장해서 자랑하러 올 때는 보람 있습니다.” 기업이 원하는 대로 모두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 거절하는 것도 힘든 일 중 하나다. 물론 심사역이 단독으로 투자 결정을 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회사 내 임원들이 포함된 투자심의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내린다.

그는 심사역 중에서는 젊은 편에 속한다. 평균 나이는 30대 중반으로, 심사역도 트렌드가 있다고 한다. 투자업계, 금융계에서 넘어온 심사역이 1세대, 대기업 출신으로 산업 전문가가 2세대이고 최근 3세대는 창업가 출신 심사역이 많다. 그도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기 전에는 창업가로 살며 고생도 해봤다.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강의실에서 배운 것을 실제로 적용해보려고 했지만 써먹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리어카를 끌고 커피를 팔아보라”고 조언했다. 유통, 가격정책, 마케팅 등을 다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하려고 하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창업 동아리를 기웃거리다 미국 MIT에서 주최하는 창업 관련 워크숍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커피 팔 생각이나 하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 친구들은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인도 대학생들은 미국의 개발자 착취에 맞서 개발자 육성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시야를 확 넓히고 돌아온 그는 스포츠 매칭 서비스, 인재 매칭 등으로 창업을 했지만 성공의 맛을 보진 못했다. 대신 실행력이 뛰어난 최인규 대표와 함께 벤처캐피털리스트로 빠르게 성장하는 경험을 했다. 언젠가는 창업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그는 “스타트업들의 꿈의 크기가 더 크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애정을 무기로 그는 오늘도 차세대 유니콘을 찾아 뛰고 있다.

다음 추천 주자는?

로앤컴퍼니 안기순 이사

추천 이유 AI로 법률업계에 ‘혁신’ 도전장을 내밀었다. 변호사 출신이 AI 연구에 뛰어들어 국내 리걸테크(Legal-Tech)를 이끌고 있는 안기순 이사야말로 우리 시대의 프런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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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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