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CVC, 해외파 인재영입 경쟁…오너들 벤처 인맥쌓기 나서
입력 2020.10.23 07:00|수정 2020.10.23 14:59
    해외 경험 있는 유학파 출신 선호
    실리콘벨리 VC들과 공동 투자나
    美₩유럽 기반 회사 창업하기도
    • 대기업 지주회사 산하의 벤처캐피탈(기업형 벤처캐피탈 CVC) 설립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능한 인재를 모으기 위한 활동도 활발해졌다. 대기업 오너들은 벤처 인맥쌓기에 나서고 있다. 발빠른 금융사들은 이런 니즈에 맞춰서 패밀리오피스를 운영하며 기업 오너들과 스타트업 인재들 간의 가교 역할에 나섰다.

      롯데엑셀러레이터는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신기술 사업투자조합을 결성을 비롯해 추가적인 펀드조성에 나섰다. 신세계 그룹은 지난 7월 시그나이트파트너스를 설립하고 그룹 첫 모태펀드인 ‘스마트 신세계 시그나이트 투자조합’을 결성한다. CJ그룹의 타임와이즈는 ‘글로벌혁신성장펀드’ 등 계열사 자금을 모아 투자에 나설 채비를 갖췄다.

      아예 실리콘벨리에 CVC를 설립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GS그룹은 지난 7월 1900억원을 투자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GS퓨처스’를 설립했다. GS리테일을 비롯해 계열사 10곳이 출자형식으로 참여했다. LG증권(현 NH투자증권)에서 IB업무 경험이 있는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벤처투자에 관심이 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단 대기업뿐 아니라 금융지주들도 벤처투자에 적극나서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2018년 하나벤처스를 공식 출범시켰다.

    • CVC가 하나둘씩 출범하면서 인재 영입 전쟁도 한창이다. 특히 벤처 투자 경험이 있는 벤처캐피탈(VC) 인원들이 영입 1순위이다.

      최근에는 해외경험이 있는 유학파 출신들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아졌다. 타임와이즈, 하나벤처스 등 CVC의 대표들 대다수가 해외MBA출신에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뱅킹 및 벤처캐피탈 경험이 있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CVC 설립 취지가 대기업의 미래먹거리 발굴이란 점에서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 비즈니스 발굴에 있기 때문이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CVC를 비롯해 주요 VC에 유학파 출신의 영어가 능통한 인재들이 주목 받고 있다”라며 “실리콘밸리의 VC들과 공동 투자하는 사례도 많아지면서 글로벌 감각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연스레 CVC의 투자대상도 글로벌 플랫폼으로 확대할 수 있는 회사들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 한정된 비지니스를 하는 회사를 굳이 대기업이 나서서 투자할 유인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실제 최근 대규모 펀딩에 성공한 회사들 대부분이 해외에서 통하는 비즈니스를 보유하고 있다. 중동의 카톡이라 불리는 ‘아자르’의 하이퍼커넥트는 해외에서만 4000억원의 투자유치를 목표로 하며, 영미권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글로벌 웹소설 플랫폼인 ‘레디쉬(Radish)’는 설립 3년만에 750억원을 유치했다.

      최근에는 아예 미국이나 유럽 기반에 회사를 창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100만 유투버로 유명한 리아유(유누리) 대표가 창업한 크레이브뷰티는 미국을 기반으로 스킨케어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JP모건 출신의 심동현 대표가 뉴욕에 창업한 패션 브랜드 ‘ONDO’도 비즈니스 기반을 미국에 두고 있다.

      한 CVC 관계자는 “미국 등 해외에서 비즈니스 확장성이 있는 회사들을 선호한다”라며 “최근에는 국내창업자 중에서 처음부터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는 창업자들이 늘고 있으며 아무래도 소비시장의 규모가 다르다는 점에서 일단 해외로 확장가능성이 높은 업체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의 CVC사업은 오너들이 직접 챙기고 있다. 이주성 세아제강 부사장은 가족회사 에이팩인베스터스을 통해 벤처투자에 나서고 있다. 에이팩인베스터스는 세아제강의 지배 체제의 한 축으로 추후 승계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재벌 2~3세들의 벤처투자 모임이 활발해졌다”라며 “사교모임이 아닌 실제 투자설명만 짧게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투자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대기업 오너들까지 벤처투자에 나서자 증권사들도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벤처투자 모임 등을 활발하게 조성한다. 삼성증권은 30억원 이상의 초고액자산가 서비스인 SNI를 통해 이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초고액자산가들끼리 친목 모임이 자연스러운 투자 기회로 이어지게 만들기 위함이다. 비단 삼성증권뿐만 아니라 초고액자산가를 위한 이런 모임은 각 증권사에 주요한 사업모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오너 모임뿐만 아니라 최근에 오너들의 사위모임도 활발하게 움직인다”라며 “이런 모임에 초청 대상에 스타트업 대표들도 참석해 추후 투자 모임으로도 발전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