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스타트업 `노비계약서` 두고만 볼 것인가

창업·투자 열기가 여느 때보다 뜨겁다. 지난해 벤처투자는 2조원을 넘었다. 엔젤투자도 1400억원으로 10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창업이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창구로 각광받고 있다.

늘어나는 수치에 집중하는 사이 예측하지 못한 사각지대가 있다. 코스닥 또는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하지 못하면 벤처캐피털(VC)이 강제로 기업을 매각되는 투자 계약서가 그것이다. 확정 투자수익 지급까지도 포함했다고 한다.

이러한 조항은 소수 지분을 가진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가 투자 기업의 책임 경영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금융감독원은 사모투자펀드(PEF) 시장에서는 옵션부 투자 계약에 대한 제재를 하고 있다. 2014년부터 원금 회수 비율을 확정한 `대출형 투자`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VC가 스타트업 기업에 적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일반 시각이다.

지난 2013년 벤처캐피탈협회는 이를 반영, 벤처투자 표준투자계약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금감원 역시 새해부터 시행될 창업벤처 전문 사모펀드에서 관련 옵션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장에서 이를 지키는 VC는 많지 않다. 모험(벤처) 투자에 나서야 할 VC가 너무나 안전한 자금 회수 조건을 스타트업에 내건 셈이다. 투자 받은 스타트업은 기업을 제대로 키워 보기도 전에 VC가 염가로 기업 매각에 나설까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스타트업 기업 대상으로 하는 현대판 `노비계약서`다.

관리감독에 나서야 할 당국은 실태 파악조차 못한다. 조항을 지키고 안 지키고는 투자기업과 VC 간 문제라며 외면한다. 창업을 육성해야 할 당국이 금융 자본의 목소리만 반영한다는 비판이다.

구글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로 알려진 영국 인공지능(AI) 개발 업체 딥마인드를 6억달러에 사들였다. 불과 4년 된 스타트업이었다. 미국의 월마트는 제트닷컴이라는 2년 된 스타트업을 33억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투자자 자금 회수를 최우선하는 상황이라면 한국판 딥마인드 출현은 요원하다.